금산의 역사 인물
상태바
금산의 역사 인물
  • 새금산신문
  • 승인 2019.08.19 16: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획연재
장 호 금산문화원장
장 호 금산문화원장

1. 군수 동악 이안눌

동악 이안눌은 17세에 진사에 수석합격을 하게 된다. 하지만 주변의 시기와 모함에 모든 것들을 접고 학문에 전념한다. 그 후 1599(선조32) 정시문과에 차석으로 급제를 하여 형조?호조 좌랑을 역임하고 예조좌랑이 되어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온다.

1611(광해군3) 912일 금산 군수를 제수 받아 어머니를 모시고 1012일 금산군수로 부임을 한다. 그는 올곧고 강직하여 조정의 일에 시비를 가려 극언을 하여 고관들의 미움을 받는 와중에도 함경도, 황해도, 평안도, 경상도(동래?경주), 전라도(담양), 충청도(공주?금산), 경기도(강화) 등 지방벼슬을 많이 하였고 전국을 돌며 올바른 정치에 펼치었다.

동악 이안눌은 글씨의 신 한석봉, 문장의 신 최집과 함께 시의 신으로 조선3대 신으로 불리었다. 이러한 역량을 금산 군수로 재직하면서 금산의 아름다운 산하를 시로 표현을 하여 금계록 이라는 시문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금계록의 '금계'를 따와 금산의 관아에 금계관이라는 이름을 지었으며 그 현판이 지금도 금산 중앙 초등학교 약물관에 자료로 보관 되어 있다. 이런한 이안눌의 흔적을 다른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에 위치한 동국 대학교에서는 동악선생시단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많은 동국인들은 동국대학교의 명칭인 동국이 이안눌의 호를 따 동국이라고 명명하게 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단에는

문장은 황량하고 낡은 시단만 남았는데

을라가 조방하니 골자기는 탁 트어였에

가을하늘 가륵한 풍악소리 마음을 통쾌하게 하는데

햇살을 가리는 소나무 아래 두건 젖혀쓰니 시원하다

 

내용을 보면 당대 최고의 문장가들이 풍류를 즐기는 방식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의미 있는 역사적인 자료이다. 이렇듯 조선시대 시의 신으로 불릴 만큼 문장가이신 이안눌의 정신을 이어 받고자 하는 동국대학교의 뜻과 애정이 위치와 이름의 유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렇듯 문학적,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동악 이안눌이 금산군수에 제직 했던 것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안눌 군수는 후세 대재학에 근무하면서 동악시단을 만들고 권필, 허균, 주위안, 사천도, 이장구, 이효민 등과 함께 시와 학문을 이야기 하고 토론하는 하는 지식인들의 장 형성하였다.

위와 같은 그의 문확적 역량을 우리 고장의 강과 산을 시로 아름답게 표현하였고 그 아름다운 시처럼 금산군의 내면마저 가치있고 아름답게 하기위하여 올바른 정치를 펼쳐 나간기록이 우리가 갖고 있는 금계록에 잘 나타나 있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신 김상일 교수와 통화를 하였다. 김교수는 금산에 역사 인물로 이안눌 군수를 적극 추천하였다. 그 이유는 400여 년 전의 인물을 동국대학교에서 소중하게 학문적, 정신적 스승으로 모시듯 우리고장 금산도 이런 분의 사상과 이념을 스승과 같이 모셨으면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전국지자체에서 문화상품을 발굴, 발전하는 것에 힘을 쓰는 시대이다. 우리도 우리고장에 역사와 전통의 한 부분인 동악 이안눌 군수의 시와 이념과 사상을 역사문화관광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고을 이름을 고려 때에 새롭게 명해

참정공의 영화가 금의 환양을 기렸네

백재 때는 이 고을이 진내군으로 전해졌는데

신라 때에 시이현을 폐하여 합병했었네

율정과(윤택) 야은(길재) 선현의 고장

직각과 감문의 효자비가 서있네

거친 골짜기 한 고을에 고적이 많은데

양봉의 충혈이 가장 애달프구나

 

땅이 호남에 속해 골짜기가 아주 깊은데

첩첩이 둘진 산등성이와 고개가 가파르기만 하구나

가을서리도 일찍 내리고 봄에도 늘 쌀쌀한데다

아침해는 더디 뜨고 석양엔 그늘지네

고을아전은 어리석어 들사슴 같고

관아 뜨락은 고요해 산새만 우짓네

거듭 난리를 격어서 백성도 적어 졌으니

전쟁터 귀신들이 황혼녘 숲에서 우네

 

1020일 금산군수로 재수하면서 시를 썼다. 위 시에는 이안눌 군수가 금산에 처음 들어오면서 금산에 역사와 유림인물, 임진왜란의 주역인 제봉 고경명, 중봉 조헌 의병장과 금산의 풍광까지 시로써 이야기했으며 역사적인 사실인 1592년 임진왜란과 함께 금산의 읍성() 및 주요 관아가 불타 없어진 것까지 아울러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동악 이안눌의 정신을 기반으로 가치있는 문화상품을 만드는 것은 어쩌면 지금 정체하고 있는 한국의 문화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의 효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금산군의 아픈 역사 속에 이안눌 군수는 161111월에 부임을 했다가 161310월에 떠나신다. 평생을 학문을 배우고 가르치며 4379수의 시를 남겼으며 동악집 26권의 책으로 정리를 하였다. 그 중에 동악집 10편 금계록에는 이안눌이 바라본 금산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문학적인 가치가 잠들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