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물페기농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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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물페기농요
  • 새금산신문
  • 승인 2019.11.2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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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장호 금산문화원장
장호 금산문화원장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평촌 2리에 전승되고 있는 풀페기 농요는 도지정 무형문화재 제 16호이다. ‘물페기 마을’ 이란 명칭은 비가 많이 오면 침수되는 까닭에 물페기 마을로 불리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에서 200~300년 전부터 두레 때 불려지기 시작한 물페기 농요는 농사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과정을 노래와 동작으로 담고 있으며 토지고사로 시작하여 모심는 소리-두렁밟기-아시매기-두렁고치기-재벌매기-방아소리-쌈싸는 소리-장원놀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모심는 소리와 아시매기로부터 쌈싸는 소리에 이르는 논맴소리가 주종을 이룬다.

먼저 두레가 시작되었다는 알림으로 나팔소리가 나면, 마을 초입에 사람들이 모여 토지신에게 고사를 지내는 것으로 농요의 첫문을 연다. 이 후 모를 심으면서 부르는 소리, 쥐와두더지 등이 논두렁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두렁밟기를 이어가고 보름정도 이후에 호미로 논을 매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이 노래를 ‘얼카산이야’ 라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이소라는 ‘얼카산이야’는 충남에서 일반적인 ‘얼카덩이리’가 옥천군과 영동군에서의  ‘잘하네’ 류를 만나 변화 한 것으로 보고 금산군과 대전시에서 주로 확인되는 고유한 특징이라 볼 수 있다. 두렁고치기는 폭우로 논두렁이 무너졌을 때의 상황을 노로 표현한 것이며 이 후 십여일 후에 재벌매기를 하는데 이소라는 재벌매기에서 농부들이 후렴을 초장 [오-,오오-]-중장[헤헤-이, 에헤-, 에헤이하~, 하-]-말장 [어어-허-어어, 어어-허허 또는 오오-호-, 오오-호]으로 구분된다고 하여 ‘삼장소리’ 라고 한다.

물페기 농요의 마지막에서는 추수하여 방아를 찧는 소리를 경쾌하게 부르고, 방아소리가 끝난 후에 둥그렇게 둘러 않아 밥을 지어 쌈을 싸는 동작을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마지막으로 장원놀이는 백중을 전후하여 마을에서 농사를 제일 잘 지은 머슴을 뽑아 댕댕이 넝쿨로 관을 씌우고 삿갓으로 일산(햇볕을 가리기 위하여 세우는 큰 양산. 우산보다 크며 놀이할 때에 한데에다 세운다.)을 받아 소에 태워 도는 것이다. 논일을 할 때는 악기 없이 노래하는 게 보통이었고, 날을 정하여 천렵을 할 때에도 종종 부르는 민요였다.

위와 같은 구성을 갖춘 물페기 농요는 금산군의 지리적인 특징인 경상도 전라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형국으로 인하여 두 지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산악지대의 소리와 평야지대의 소리가 결합된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금산지역의 주요 농작물인 인삼에 관한 가사도 농요에 포함되는 특징을 띄고 있다. 1991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였으며 1992년 8월 17일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 16호로 지정되었고 이 후 기능보유자 양승환씨를 통하여 전승되고 있는 실정이다.

농업사회에 힘든 노동을 이겨내는 하나의 방법으로 형성된 물페기 농요는 금산의 지리적, 역사적 특징 담겨져 있으며 지금의 형태를 구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많은 시간이 지나 오면서 금산지역의 특색이 자연스레 녹아들었으며 마을의 화합을 도모하는 컨텐츠이며 공동체 의식을 고취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기도 하였다. 

현대는 개인주의로 인하여 사회적인 문제가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의 답을 과거 우리의 민속의 방향성과 뜻에 찾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서로 협동하고 독려하고 힘든 노동의 고됨을 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달래는 이러한 감정적인 흐름을 현대의 사회는 받아들이고 많은 새로운 문화의 방향성으로 삼고 재창조를 통하여 사회적인 아픔을 치료해야한다.

곁에서 누구군가 나의 노래에 화답을 하고 눈을 맞추고 일을 돕고 힘들어도 웃어준다면 분명 지금의 사회문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 될 것이며 우리가 나아가는 한 걸음이 한 걸음의 가치가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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