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가 주류가 되기까지: 스크린을 장악한 오컬트와 인디의 반란

최근 극장가에서는 특정 마니아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장르들이 대중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흥행의 중심에 서고 있다. 한국에서는 오컬트 공포물이 천만 관객이라는 전인미답의 고지를 밟았고, 북미권에서는 2010년대 인디 음악 씬의 하위문화를 날 것 그대로 포착한 독립 영화가 평단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겉보기엔 전혀 교집합이 없어 보이는 이 두 현상은, 얄팍한 대중성에 기대기보다 각자의 서브컬처를 타협 없이 깊숙이 파고들 때 오히려 더 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스크린의 새로운 공식을 보여준다.

오컬트 장르의 한계를 허물다, ‘파묘’의 천만 흥행

배급사 쇼박스에 따르면 지난 24일 오전 8시 기준 영화 ‘파묘’가 누적 관객 수 1000만 1642명을 기록했다. 개봉 31일 만에 거머쥔 타이틀이자 역대 한국 영화 중 23번째 천만 영화의 탄생이다. 직전에 천만 고지에 올랐던 ‘서울의 봄’(32일)보다 하루 빠른 속도다.

이번 흥행은 그간 역대 천만 영화 명단(명량 등 역사물 9편, 범죄·액션물 5편)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비주류 ‘오컬트’ 소재를 통해 달성한 대중적 성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전까지 동종 장르 최고 흥행작은 나홍진 감독의 ‘곡성’(687만 명)이었고, 그 뒤를 장재현 감독 본인의 전작인 ‘검은 사제들’(544만 명)이 잇고 있었다. 마니아층의 전유물이었던 공포 장르가 천만 신화를 쓸 수 있었던 핵심 동력은 무속신앙과 풍수지리라는 보편적인 관심사에 항일 코드라는 묵직한 정서를 절묘하게 섞어낸 데 있다. 20~30대 중심이었던 관객층이 50대 이상 중장년층으로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된 배경이기도 하다.

두 무당과 풍수사, 그리고 장의사가 미국 교포 가족의 기이한 병을 고치기 위해 묫자리를 파헤치며 시작되는 영화는 중반부를 기점으로 톤이 급변한다. 초반부에는 귀신이 등장하는 정통 공포물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지만, 후반부에는 ‘쇠말뚝’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등장시켜 네 주인공이 일제의 잔재와 맞서 싸우는 활극의 형태를 띤다. 이야기의 흐름이 급격히 나뉘는 탓에 개봉 초기 찬반 논쟁이 일기도 했으나, 오히려 이 치열한 논쟁은 영화에 대한 세간의 주목도를 높이는 기폭제가 되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차량 번호판 등에 숨겨진 항일 코드를 관객들이 직접 찾아내고 해석하는 등 관람 이후의 자발적인 이야깃거리가 강력한 ‘입소문’으로 작용한 것이다.

김봉석 영화 평론가는 “초반에 실체가 보이지 않는 오컬트 특유의 분위기로 밀어붙이다가, 후반부에 이르러 네 사람이 실체화된 적과 힘을 합쳐 싸우는 구조로 변주하며 카타르시스를 증폭시켰다”고 분석했다. 치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비현실적인 소재 안에 정교한 논리를 쌓아 올린 덕분에 영화의 톤이 바뀌는 지점에서도 어색함이 없는 웰메이드 작품이 탄생했다는 평가다.

이번 성과는 한국 영화계 최초로 ‘장르 외길’을 걸어온 감독이 일궈낸 결실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장재현 감독은 학창 시절 단편 ‘12번째 보조사제’를 시작으로 ‘검은 사제들’, 사이비 종교를 다룬 ‘사바하’를 거치며 탄탄한 고정 팬층을 구축해 왔다. 그는 일반적인 공포물에서 피해자가 주인공이 되는 공식을 탈피해, 일방적으로 당하기보다 조력자로서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인물들을 내세웠다. 어두운 이야기에 본능적으로 끌린다는 그는 앞으로도 오컬트 장르의 외연을 넓혀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 영화를 통해 배우 최민식은 두 번째 천만 흥행작을 품에 안았고, 김고은과 이도현은 새롭게 천만 배우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특히 이도현은 스크린 데뷔작으로 엄청난 진기록을 남기게 됐다.

방황하는 청춘의 날 것 그대로, ‘마일 엔드 킥스’

한국에 오컬트 신드롬이 있다면, 북미 독립 영화계에서는 특정 시대의 음악 서브컬처와 청춘의 방황을 결합한 챈들러 레박 감독의 코미디 ‘마일 엔드 킥스(Mile End Kicks)’가 흥미로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극의 주인공은 토론토의 인디 록 잡지 ‘머지 위클리(Merge Weekly)’에서 일하는 22살 음악 평론가 그레이스(바비 페레이라)다. 동료들이 록 밴드 허스커 두(Hüsker Dü)의 명반을 두고 무의미한 열띤 논쟁을 벌이는 동안, 지난 1년간 무려 400편의 기사를 쏟아낸 그녀는 자신의 통찰력을 발휘할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앨러니스 모리세트의 명반 ‘Jagged Little Pill’에 담긴 여성의 억눌린 분노와 그것이 거둔 상업적 성공을 조명하는 책을 쓰기로 한 것이다.

계약을 따낸 그레이스는 90년대 시애틀을 연상시키는 인디 힙스터들의 성지, 몬트리올로 떠난다. 베이글과 담배로 끼니를 때우며 오롯이 집필에 매진하겠다는 당초의 야심 찬 계획과 달리, 그녀의 몬트리올 생활은 이내 궤도를 이탈한다. 영화는 목표를 잃고 휩쓸리는 20대 초반의 혼란스럽고 무계획적인 리듬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부모의 품을 떠나 처음으로 온전한 자유를 맞이한 젊은 여성의 좌충우돌을 때로는 민망할 정도로 가감 없이 투영해 낸다.

크레이그스리스트를 통해 구한 방에서 그레이스는 프랑스계 캐나다인 커플인 DJ 마들렌(줄리엣 가리에피)과 드러머 휴고(로버트 네일러)를 만나며 현지 언더그라운드 음악 씬에 깊숙이 발을 들인다. 일탈을 꿈꾸는 너드 스타일로 한껏 꾸민 그녀는 휴고의 밴드 ‘본 패트롤’의 공연장에서 두 명의 멤버와 미묘한 기류를 형성한다. 구강 포진 탓에 자발적 금욕주의를 선언한 예의 바른 기타리스트 아치(데본 보스틱), 그리고 스스로를 포스트 그런지 시대의 짐 모리슨쯤으로 착각하며 과대망상에 빠진 허세 가득한 보컬 셰비(스탠리 사이먼스) 사이다. 다소 과장되고 유치해 보일 수 있는 인디 씬의 단면들을 감독은 쾌활하고도 예리한 시선으로 해체한다.

마니아의 취향, 보편적인 공감을 얻다

묫자리를 둘러싼 한국형 오컬트물과 캐나다 인디 음악 씬을 전전하는 20대 평론가의 코미디. 두 작품은 전혀 다른 궤도를 달리고 있지만, 자신들이 다루는 고유한 세계관의 디테일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어설프게 대중의 입맛에 맞추려 서사를 둥글게 다듬기보다는, 장르적 한계나 마니아적인 코드를 오히려 가장 강력한 무기로 승화시켰다. 가장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가 때로는 가장 넓고 보편적인 공명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두 영화는 각자의 스크린을 통해 훌륭하게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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