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한국 영화계 살리기 총력전… 13년 만에 뭉친 탕웨이·김태용 ‘원더랜드’로 돌파구 찾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깊은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 영화계를 구하기 위해 정부가 팔을 걷어붙였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최근 영화계가 문자 그대로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단계”에 이르렀다며 강한 위기감을 드러냈다. 영화 산업이 흔들리면 K-컬처 전반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심폐소생술 시급한 영화계, 656억 원 긴급 수혈
정부는 생태계 복원을 위해 약 40편의 영화가 새롭게 제작될 수 있도록 656억 원의 추가 예산을 긴급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2019년 당시 45편에 달했던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 상업영화는 2025년 기준 30편 밑으로 뚝 떨어졌다. 최 장관은 지난해 제작된 영화가 30편 남짓에 불과했다는 점을 꼬집으며, 이 정도 수준으로는 산업 자체를 유지하기 어렵고 제작 역량마저 훼손된다고 진단했다.
이번 지원책의 핵심은 이른바 ‘허리급’ 영화의 육성이다. 기존 20억~100억 원 규모에 집중됐던 지원 범위를 넓혀 100억~150억 원대 중급 규모의 영화까지 포괄하기로 했다. 제작비 105억 원을 투입해 1,630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은 메가 히트작 ‘서울의 봄’과 같은 성공 사례를 의도적으로 늘려보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극장가 활력 불어넣을 할인권 배포와 ‘홀드백’ 논쟁
제작 지원과 더불어 관객들의 발길을 극장으로 돌리기 위한 유인책도 마련됐다. 내수 진작을 위해 1인당 최대 2매씩 사용 가능한 6천 원권 영화 할인 쿠폰 450만 장을 배포한다. 관람객 증대를 통해 전반적인 소비 촉진까지 끌어내겠다는 의도다. 이번 영화 관련 추경 예산은 문체부 전체 추경의 14.2%, 기존 연간 영화 예산의 절반에 달하는 매머드급 규모로 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고육지책이다.
한편, 극장 개봉작이 스트리밍 플랫폼(OTT)으로 넘어가는 유예 기간을 강제하는 ‘홀드백’ 제도에 대해서는 여전히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이 기간을 6개월로 설정하고 있지만, 최근 581명의 영화인들은 이것이 현 위기에 대한 엇나간 처방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최 장관 역시 해당 사안은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으며 심도 있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
위기 속 피어난 감성 대작, ‘만추’ 이후 13년 만의 재회
이렇듯 혹독한 보릿고개를 겪고 있는 한국 영화계지만, 예술가들의 치열한 고민이 담긴 작품들은 계속해서 관객을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 당장 오는 5일 개봉을 앞둔 김태용 감독의 신작 ‘원더랜드’가 그렇다. 이 영화는 불치병으로 죽음을 앞둔 엄마 바이리(탕웨이)가 어린 딸을 위해 인공지능(AI)으로 구현된 가상의 삶을 선택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사막 한가운데서 고고학자가 되어 딸과 매일 영상 통화를 나누지만, 화면 너머로는 결코 만질 수 없는 실체 없는 그리움이 결국 시스템의 균열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원더랜드’는 13년 전 영화 ‘만추’에서 감독과 주연 배우로 인연을 맺었던 김태용과 탕웨이가 부부의 연을 맺은 후 다시 한번 의기투합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일찍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엄마가 된 탕웨이의 진심, 그리고 관계의 딜레마
어느덧 여덟 살 딸을 둔 엄마가 된 탕웨이는 이번 작품에 자신의 애틋한 모성애를 고스란히 녹여냈다. 그녀는 촬영 당시를 회상하며 “아이가 너무 어려서 웬만하면 부모 품을 떠나지 않게 하려고 온갖 신경을 썼다. 그런데도 일주일가량은 낯선 사람의 손에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어서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영화의 출발점은 꽤나 일상적이었다. 김태용 감독은 평소 화상통화를 하던 중 실시간으로 웃고 떠들지만 정작 눈앞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 실존의 간극에서 영감을 얻었다. 탕웨이는 시나리오가 구체화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고, 극 중 바이리의 노모 역으로 홍콩의 베테랑 배우 니나 파우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주변 지인들이 극 중 모녀의 모습이 실제 탕웨이의 어머니와 너무 닮아 놀랐을 정도라고 한다. 경극 배우 출신인 친정어머니가 자꾸 겹쳐 보여서인지, 그녀는 현장에서 니나 파우의 눈만 봐도 감정이 벅차올라 디렉팅을 받을 때마다 감정을 자제하라는 주문을 수없이 받았다는 후문이다.
극 중에는 바이리 모녀 외에도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연인(박보검)을 복원시킨 여성(배수지), 일찍 세상을 떠난 손자(탕준상)를 가상 세계에서나마 유학 보낸 할머니(성병숙)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AI 시대가 안겨줄 관계의 딜레마를 묵직하게 던진다. 탕웨이는 만약 자신이 바이리와 같은 상황에 부닥친다면 쉽게 원더랜드행을 택하진 못할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그 세상에 한 번쯤은 들어가 지금은 곁에 없는 외할머니와 친구를 꼭 안아보고 싶기는 하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부부로 함께한 10년, 더욱 단단해진 예술적 시너지
두 사람이 부부라는 이름으로 삶의 궤적을 함께한 지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며 두 사람 모두 성숙해졌지만, 탕웨이는 자신에게 찾아온 내면의 변화가 훨씬 컸다고 고백했다. “‘만추’ 촬영 직전 그리스로 여행을 갔었다. 마침 내 생일이었는데,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위에 뜬 둥근 달을 보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서른이나 됐는데 곁에 남자도 없고 결혼도 안 했고,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다.”
당시를 유쾌하게 회상한 그녀는 “‘원더랜드’를 찍을 때는 내게도 남편과 아이가 생겼다. 나를 알뜰히 챙겨주는 가족이라는 존재가 배우로서 살아가는 데 가장 든든한 지지대가 된다”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이안, 박찬욱 등 세계적인 거장들이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는 배우임에도 그녀는 앞으로 김태용 감독이 내미는 대본은 거절하기 힘들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남편이 흥미를 느끼는 지점이 곧 자신이 매력을 느끼는 지점과 맞닿아 있고, 그의 작품 전반에 깔린 특유의 따뜻함과 독창적인 유머 방식을 진심으로 좋아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배우와 감독의 관계를 넘어, 깊은 신뢰와 애정으로 서로의 세계를 확장해주고 있는 두 사람. 유례없는 한파를 겪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 이 예술가 부부의 두 번째 합작품이 어떤 온기를 불어넣을지 극장가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